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벨 1세 (문단 편집) === 즉위와 치세 === 결국 예카테리나 2세는 유일한 적자이면서 정적이었던 파벨을 꺼려서, 장손자 [[알렉산드르 1세|알렉산드르]]와 둘째손자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콘스탄틴]]이 태어나자 아들 부부에게 빼앗아서 자신이 키웠다. 그러니 알렉산드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부모와 별 애정 없이 자랐고 예카테리나도 승하하기 10여년 전부터 아들 대신 손자인 알렉산드르를 즉위시키려 구상했지만, 애초에 명분도 약한 데다 알렉산드르도 준비가 안 되었다고 반대했기 때문에 뜻을 이루진 못하고 수순대로 황태자 파벨이 파벨 1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즉위하자마자 어머니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하려 했고, [[러시아 제국]] 궁정에 만연한 [[프랑스/문화|프랑스풍]]은 물론 외국의 풍습과 물건까지 금지하려 했다. 파벨 1세의 말에 따르면 "러시아 제국에서 귀중한 것은 자신과 자신의 군대와 자신과 이야기하는 사람 뿐"이었다. 다만 그 사람도 가치 있는 것은 이야기하는 '''그 순간 뿐'''.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하긴 집안 사정이 저 모양이니 문제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1797년 [[대관식]]을 치르자마자 제위계승법을 발표해 '''장자계승원칙'''을 확립시켰다. 그전까지 러시아의 제위 계승은 황제가 생전에 직접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식이었는데 파벨 1세는 제위계승법을 서유럽처럼 법령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장자계승원칙은 왕위계승자를 사전에 확정하고 정치적 혼란을 막는 조치였다.[* 당시 서유럽에서는 왕위 승계시마다 쿠데타가 일어나는 러시아의 야만성을 비웃었다. 특히 예카테리나 2세와도 서신을 교환했던 [[볼테르]]까지 지명상속제를 두고, 지명제가 아니라 점령제가 아니냐고 예카테리나를 비웃을 정도.] 이것은 앞서 어머니 치세에 대한 반발로 자신을 건너뛰어 황위계승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외교정책에 있어서 [[프랑스 혁명]]을 극도로 증오하여 사상은 물론이고 프랑스풍의 옷까지 규제했다. 이 당시 [[러시아 제국]] 최고의 군인 중 하나로 꼽히는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하기도 하였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몰타를 잃어서 방황 중인 '''[[가톨릭]]''' [[몰타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제1공화국|프랑스]]에 쳐발려서 굴복한 [[유럽]] 나라에서 대인배 취급을 받았으나 곧 러시아 빼곤 죄다 프랑스에 굴복하였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강화에 응해야 했다. 여담으로 프랑스 방문 때 파벨은 [[루이 16세]]의 딸인 어린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에게 '당신을 모시게 된다면 큰 영광'이라는 예의상 드립을 날렸는데, 혁명 후 망명한 마리 테레즈가 러시아에서 살게 되고 파벨이 먹고 살게 해주었으니 좀 이상하게 이루어진 셈. 한편으로는 유럽 대륙 내에서 [[러시아 제국]]의 영향력을 넓히고자 하였으며 실제로 [[덴마크]]를 러시아편으로 끌어들이는 등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해상 교역에 차질이 생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영국]]이 하이드 파커와 [[호레이쇼 넬슨]] 지휘 하에 함대를 파견했고, 영국이 덴마크를 코펜하겐 해전에서 탈탈 털어버렸다. 황제는 분개했으나 해상에서는 [[영국 해군]]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국내에선 폭압적인 정책으로 인기를 잃고 있었다. 무엇보다 [[왕권강화|귀족들의 특권을 제한하는 것]][* 이는 서유럽 절대왕정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1차로 서유럽화를 추진한 군주가 [[표트르 1세]]라면 2차로 서유럽화를 추진한 군주는 파벨 1세인 셈이다. 실제로 상술한 장자계승원칙 확립과 후술할 내용처럼 러시아군에 프로이센 복장을 입힌 것 또한 파벨 1세가 러시아의 서유럽화를 추진한 것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차이점이라면 표트르 대제와 달리 파벨 1세는 상술한 것처럼 프랑스풍을 배척했다는 것.]으로 많은 반발을 샀다. 어머니 [[예카테리나 2세]]가 재위하던 시절 자신의 취약한 정통성을 군대와 귀족의 인기를 얻어 만회하려고 국가 소유의 [[농노]]까지 마구 퍼주면서 귀족의 농노제 특권을 강화시켰는데, 파벨은 일단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 총신들에게 뿌려진 국가 소유 농노들을 환수하고 여제의 애첩들을(...) 궁정에서 쫓아내는 한편, 당시 1주일에 4일간 지주에게 봉사해야 하는 농노의 의무를 3일로 단축시키고 남는 시간에는 국가농장에 투입하려 했다. 단순 산술적으로 지주들의 수입이 4분의 1은 줄어드는 격. 물론 그렇다고 해서 농노에게 자비로웠던 것은 아니라 새로 개척된 러시아 남부까지 농노제를 퍼뜨리고 자신들을 지지하는 총신들에겐 예카테리나 2세보다 더 빠르게 농노들을 분배했다. 게다가 군대에는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이후 [[독일]]풍이라면 알레르기 돋는 [[러시아군]]에 자신의 취미였던 [[프로이센]] 복장을 입히고 군제마저 개혁하려 했다. 심지어는 불패의 명장인 수보로프 대원수를 박대하고 개선식조차 금지시켜서, 고국으로 돌아온 수보로프 대원수는 자택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허망하게 사망한다. 이러니 공공연히 귀족들 사이에서 쿠데타 카더라가 돌았고 반대파에선 의심 많은 파벨의 의심을 더 자극하려고 아내와 아들 알렉산드르와 콘스탄틴까지 황제를 죽이려 한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파벨은 가족들을 궁정에서 내쫓는다. 이것이 치명타가 되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